레버리지와 장기적 사고 - 스타트업에서 놓치기 쉬운 것들

롭 무어의 "레버리지"를 읽다가 한 문장에 멈췄다.

"비전의 규모와 범위는 시간을 조망하는 시선과 비례한다."

책에서는 원 단위로 생각하는 관리자와 연 단위로 계획하는 경영자의 차이를 이야기한다. 당연한 말 같지만, 정작 내 모습을 돌아보니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빠른 실행의 함정

스타트업 초기 단계에서는 Product Market Fit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가설을 검증한다. 빠르게 만들고, 빠르게 테스트하고, 빠르게 피봇한다. 린 스타트업의 교과서적인 방법론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단기 성과에 집착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번 주 지표, 이번 달 성장률, 다음 분기 목표. 계획을 세우긴 하지만 대부분 3개월을 넘기기 어렵다. 장기적이고 구체적인 계획보다는 눈앞의 실행과 결과에 온 신경이 쏠린다.

그런데 롭 무어는 이렇게 말한다. 노력은 복리로 누적된다고. 사업의 마지막 몇 년, 아니 몇 개월에 더 큰 성과가 나온다고.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복리 효과를 누리기 직전에 포기한다는 것이다.

기회비용이라는 렌즈

책에서 인상 깊었던 또 다른 개념은 기회비용 이다. 시간 사용에도 기회비용이 있다. 오늘 A를 한다는 것은 B를 하지 않기로 선택하는 것이다. 예금에 돈을 넣으면 주식 투자 기회를 포기하는 것처럼.

단기 성과에 집착하는 것도 결국 기회비용의 문제다. 지금 당장 숫자를 올리기 위한 일들은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만 하다 보면 장기적으로 훨씬 가치 있는 일들을 할 시간을 잃는다. 시스템을 만드는 일, 팀 문화를 다지는 일, 본질적인 제품 경쟁력을 키우는 일 같은 것들 말이다.

이 책의 핵심은 결국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정말로 중요한 일인지 끊임없이 곱씹어야 한다 는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인상깊은 관점이 있다. 미래의 성공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아니라, 지금 하고 있지 않은 일 의 결과일 수 있다는 것. 바쁘게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면죄부가 되어선 안 된다.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을 항상 또렷한 정신으로 정말 중요한 일인지 판단해야 한다.

그래서 저자는 묻는다. 지금 하는 일이 정말 중요한 일인가? 장기적으로 성과를 내는 일인가?

스타트업을 하면서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기가 생각보다 어렵다. 모든 일이 급하고 중요해 보이니까.

언제 계속하고, 언제 그만둘 것인가

그런데 여기서 하나의 딜레마가 생긴다. 복리 효과를 믿고 계속해야 한다는 것과, 린 스타트업에서 말하는 빠른 검증과 피봇 사이의 긴장이다.

가설이 틀렸다고 판단되면 프로젝트를 중단하고 다른 방향으로 가야 한다. 항상 조금만 더 해보면 될 것 같은 여지가 있지만, 그 '조금 더'가 6개월이 되고 1년이 되면 돌이킬 수 없는 기회비용이 된다.

그렇다면 무언가를 계속해야 하는 것과 중단해야 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책이 명확한 답을 주지는 않았지만, 내 생각에는 결국 명확한 지표와 기준을 사전에 설정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3개월 안에 이 지표가 X%에 도달하지 않으면 중단한다"처럼. 감정이나 막연한 기대가 아니라 숫자로 말하게 하는 것.

그리고 그 지표 자체가 단기적인 허영 지표가 아니라, 정말 본질적인 가치를 측정하는 것이어야 한다. 가입자 수보다는 리텐션, 방문자 수보다는 실제 사용 빈도처럼.

멘토를 찾는다는 것

책에서 저자는 멘토를 만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나도 동의한다. 문제는 어디서 만나느냐다.

나는 개발자 출신이다. 제품을 빠르게 만들고 가설을 검증하는 것에는 경험이 꽤 있다. 하지만 마케팅과 세일즈는 약하다. 사업적 인사이트가 필요한 순간들이 많다.

이런 부분을 가르쳐줄 수 있는 멘토를 어디서 만날까? 네트워킹 행사에 가야 할까, 액셀러레이터 프로그램에 지원해야 할까, 아니면 그냥 책과 콘텐츠로 배워야 할까?

답은 아직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건, 멘토를 찾는 것도 결국 장기적 관점 의 문제라는 것이다. 당장의 문제를 해결해줄 컨설턴트가 아니라, 몇 년에 걸쳐 성장할 수 있게 도와줄 사람을 찾아야 한다.

시간을 조망하는 시선

결국 이 모든 이야기는 하나로 귀결된다. 시간을 어떻게 바라보느냐.

월 단위로 생각하면 월 단위의 결과를 만든다. 연 단위로 생각하면 연 단위의 결과를 만든다. 10년 단위로 생각하면 10년 단위의 변화를 만든다.

스타트업은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는 말이 맞다. 하지만 그게 장기적 사고를 포기하라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장기적인 방향성을 명확히 하고, 그 안에서 빠르게 실행하는 것이 맞다.

나는 지금 어떤 시간 단위로 생각하고 있을까? 다음 주 배포, 다음 달 지표, 다음 분기 투자 유치. 이런 것들은 분명 중요하다. 하지만 그 너머를 보고 있는가?

장기 계획을 토대로 일간 계획을 세운다. 책에서 본 이 문장을 다시 곱씹어본다. 10년 뒤 어디에 있고 싶은지, 3년 뒤 어떤 회사를 만들고 싶은지, 그리고 그것을 위해 오늘 무엇을 해야 하는지.

단기 성과와 장기 비전 사이의 균형. 빠른 실행과 체계적 계획 사이의 균형. 이 균형을 찾는 것이 결국 레버리지를 만드는 것 같다.

책을 덮으며 생각한다. 나는 지금 정말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가? 이 일은 3년 뒤에도 의미 있는 일인가? 그리고 오늘 하루를 어떻게 쓸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