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니파와 시아파, 이란, 그리고 중동의 화약고 — 이슬람 내부와 지정학의 구조
수니파와 시아파, 이란, 그리고 중동의 화약고
이전 글에서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가 같은 뿌리에서 갈라진 과정을 다뤘다. 이번에는 그 이슬람 안에서도 어떻게 분열이 일어났는지, 그리고 그 분열이 오늘날 중동 지정학의 화약고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풀어보려 한다.
수니파 vs 시아파 — 후계자 싸움에서 시작된 1400년의 균열
이슬람이 분열한 건 의외로 신학적인 이유가 아니었다. 출발점은 순수하게 정치적 인 질문이었다.
"무함마드가 죽은 뒤, 누가 이슬람 공동체를 이끌어야 하는가?"
AD 632년, 무함마드가 후계자를 명확히 지정하지 않고 세상을 떠났다. 이때 공동체 안에서 두 갈래의 입장이 충돌했다.
하나는 "공동체가 합의해서 지도자를 뽑으면 된다"는 쪽이었고, 다른 하나는 "무함마드의 사촌이자 사위인 알리 와 그 후손만이 정당한 지도자다"라는 쪽이었다.
전자를 따른 것이 수니파(Sunni), 후자를 따른 것이 시아파(Shia) 다. 현재 전 세계 무슬림의 8590%가 수니파, 1015%가 시아파다.
두 파의 교리 핵심 — 알라는 유일하다, 무함마드는 마지막 예언자다, 라마단을 지킨다, 꾸란이 경전이다 — 은 동일하다. 그러나 처음에는 "누가 맞는 칼리프냐"는 정치 논쟁이었던 것이 1400년에 걸쳐 신학·의례·법학에서 조금씩 다른 방향으로 발전했다. 지금은 같은 종교라고 하기엔 현실 정치에서의 긴장이 너무 깊다.
지금 칼리프는 어디 있는가
수니파의 최고 지도자인 칼리프(Caliph) 는 1924년에 사라졌다. 터키의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가 오스만 제국을 해체하면서 칼리프 제도 자체를 폐지했다. 이후 수니파에는 단일한 최고 권위가 없고, 각국의 종교학자들이 분산적으로 권위를 행사하고 있다.
시아파의 상황은 더 특이하다. 시아파는 무함마드의 혈통으로 이어지는 이맘 을 지도자로 본다. 그런데 12대 이맘인 무함마드 알마흐디가 874년에 "은둔"에 들어갔다고 한다. 숨었다는 게 아니라, 신의 뜻으로 이 세상에서 감추어졌고 종말의 때에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이다.
즉, 지금은 칼리프도 이맘도 부재한 상태다. 그 공백을 어떻게 채우느냐가 수니파 국가들과 시아파 국가들이 각자 다르게 풀어온 숙제였다.
이란은 이 문제를 벨라야테 파키(Velayat-e Faqih), 즉 "법학자 통치" 개념으로 해결했다. 이맘이 돌아올 때까지 가장 뛰어난 이슬람 법학자가 정치를 이끌어야 한다는 논리다. 이게 바로 호메이니가 이란에 세운 체제의 핵심이다.
이슬람 국가들의 정교 관계 — 스펙트럼이 있다
서방에서 이슬람을 바라볼 때 흔히 하는 실수가 있다. "이슬람 국가는 다 신정국가처럼 돌아가겠지"라고 뭉뚱그리는 것이다.
실제로는 스펙트럼이 꽤 넓다.
한쪽 끝에는 이란 이 있다. 최고지도자(법학자)가 대통령 위에 군림하는 진짜 신정국가다. 그 옆으로 사우디아라비아 — 왕정에 와하비즘이라는 극보수 이슬람이 결합한 체제다. 아프가니스탄 의 탈레반도 비슷한 계열이다.
중간 어딘가에는 이집트, 요르단, 말레이시아 처럼 국교는 이슬람이지만 현실 정치에서는 상당히 온건하게 운영되는 나라들이 있다.
그리고 반대편 끝에는 터키 가 있다. 아타튀르크가 1923년에 이슬람을 국가에서 분리하고 세속 공화국을 선언했다. 인도네시아 도 세계 최대 무슬림 인구를 가졌지만 헌법상 세속 민주주의 국가다.
왜 이런 스펙트럼이 생겼는가? 이슬람교는 창시 시점부터 정교분리 개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무함마드는 종교 지도자였을 뿐만 아니라 정치 지도자였고, 군사 지도자였고, 법관이었다. 이슬람 원론에서 종교와 국가는 하나다. 그것을 근대적으로 어떻게 재해석하느냐에 따라 스펙트럼이 갈린다.
이란의 역사 — 페르시아가 이슬람을 만났을 때
이란을 이해하려면 "페르시아"라는 정체성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이란은 단순히 이슬람 국가가 아니다. 기원전 550년 키루스 대왕 이 세운 아케메네스 왕조, 즉 페르시아 제국의 후예다. 인류 역사상 최초의 세계 제국 중 하나였다.
651년, 아랍 이슬람 세력이 페르시아를 정복했다. 이란은 이슬람화되었다. 그런데 아랍에 흡수되지는 않았다. 페르시아어를 지켰고, 페르시아 문화와 자존심을 지켰다. "우리는 아랍인이 아니다"라는 정체성이 지금까지 남아있다.
결정적인 분기점은 1501년 사파비 왕조 때다. 사파비 왕조는 페르시아 전역을 강제로 시아파로 전환했다. 당시 중동의 맹주는 오스만 제국(수니파)이었다. "우리는 오스만과 다르다"는 차별화 전략이었다. 이때부터 이란과 중동 수니파 국가들 사이의 종파적 적대감이 구조화됐다.
근대로 오면, 팔레비 왕조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팔레비 왕조는 친서방 세속 독재 체제였다. 1953년에는 CIA와 영국 MI6이 민주적으로 선출된 모사데크 총리를 쿠데타로 끌어내리고 모하마드 레자 팔레비 샤를 복권시키는 일이 벌어졌다. 원인은 이란의 석유 국유화였다.
이 경험이 이란 사람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서방은 민주주의를 말하지만 자기 이익을 위해서라면 우리의 민주주의를 짓밟는다"는 인식이다.
1979년 이란 혁명 — 호메이니와 이슬람 공화국
팔레비 체제의 부패와 억압, 서방에 대한 불만이 쌓이면서 1979년 혁명이 터졌다. 루홀라 호메이니 가 이끈 이 혁명은 전 세계가 충격을 받은 사건이었다. 세속 독재를 몰아낸 게 자유주의자들이 아니라 이슬람 성직자들이었기 때문이다.
호메이니는 앞서 설명한 벨라야테 파키 개념을 실제 헌법으로 구현했다. 대통령이 있지만 그 위에 최고지도자가 있고, 최고지도자는 종교적 자격으로 모든 권력의 정점에 선다. 1989년 호메이니가 사망한 후에는 알리 하메네이 가 최고지도자 자리를 이어받았다.
이 혁명은 또한 미국과 이란의 악연을 굳혔다. 같은 해 이란 학생들이 테헤란 미국 대사관을 점거하고 444일간 52명의 외교관을 인질로 잡았다. 이 사건 이후 미국과 이란의 관계는 지금까지 정상화된 적이 없다.
이스라엘과 사우디가 이란을 싫어하는 이유
중동을 이해하는 데 있어 "왜 이 나라들이 이란을 적대하는가"를 아는 게 중요하다. 이유는 각각 다르다.
이스라엘 의 관점은 생존의 문제다. 이란은 이스라엘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더 구체적으로는 이란이 지원하는 대리 세력들이 이스라엘 사방을 둘러싸고 있다. 북쪽의 레바논에는 헤즈볼라, 가자에는 하마스, 예멘에는 후티 반군이 있다. 거기에 이란의 핵개발까지 더해지면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말 그대로 존재를 위협하는 적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의 관점은 복합적이다. 첫째는 수니파 대 시아파의 종파 대립이다. 이란이 지역 내 시아파 네트워크를 키울수록 사우디의 영향권이 위협받는다. 둘째는 지역 패권 경쟁이다. 사우디와 이란은 모두 중동의 맹주를 자처한다. 둘이 동시에 맹주일 수는 없다. 셋째는 혁명 수출 공포다. 1979년 혁명 이후 이란은 주변국에 이슬람 혁명 이념을 전파하려 했다. 왕정 체제의 사우디로서는 체제 존립을 위협하는 일이었다.
결국 이스라엘과 사우디는 이란이라는 공통의 적 앞에서 사실상 연대하는 구도가 되었다. 역사적으로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은 적이었는데, "적의 적은 친구"라는 논리가 작동한 셈이다.
이란이 이스라엘을 싫어하는 이유
이란-이스라엘의 적대 관계도 겉에서 보는 것보다 구조가 복잡하다.
혁명 이후 이란의 공식 이념은 팔레스타인 해방을 포함한다. 무함마드가 메카에서 예루살렘으로 이동했다는 "이스라 사건"으로 예루살렘은 이슬람의 3대 성지 중 하나다. 팔레스타인 문제를 이슬람 세계 전체의 문제로 규정하고, 이스라엘을 미국 제국주의의 앞잡이("소악마")로 규정한 것이 혁명 이념의 일부가 됐다.
그런데 여기엔 국내 정치적 기능도 있다. 이스라엘·미국과의 대결 구도를 강조할수록 정권의 정당성이 강화되고, 국내의 경제적 불만이 외부의 적으로 전환된다. 이란 정권이 반이스라엘 레토릭을 유지하는 이유 중 하나가 이것이다.
아이러니한 건 이란 국민들의 실제 정서다. 시위 현장에서 이란 시민들이 외치는 구호 중에 이런 게 있다.
"가자가 아니라 이란을 위해 싸워라."
정권이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해 국력을 쏟아붓는 동안 이란 국민들의 삶은 제재와 경제 위기로 무너졌다. 팔레스타인보다 내 생활을 챙겨달라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팔레비 왕조 시절 이란은 이스라엘과 비공식 우호 관계였다. 혁명이 반이스라엘 노선을 채택한 건 팔레비를 부정하는 반작용이기도 했다. 이념의 탄생에는 항상 그에 대한 반작용이 존재한다.
모든 게 연결되어 있다
이 모든 것을 하나의 흐름으로 놓으면 이런 구조가 된다.
무함마드가 후계자 없이 사망하면서 수니파와 시아파가 갈라졌다. 16세기 이란이 시아파 국가가 되면서 수니파 중동과의 종파 대립이 구조화됐다. 1979년 혁명으로 이란은 반서방·반이스라엘 이슬람 공화국이 됐다. 이란의 대리 세력 네트워크가 이스라엘을 압박하고, 이란의 지역 영향력 확대가 사우디를 위협한다. 이스라엘과 사우디가 이란이라는 공통의 적 앞에서 사실상 연대한다.
오늘날 중동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충돌은 이 구조 위에서 이해할 수 있다. 어느 날 갑자기 터진 것처럼 보이는 사건들도, 들여다보면 수십 년에서 수백 년에 걸쳐 쌓인 구조적 긴장이 폭발하는 것이다.
역사를 모르면 현재가 우연처럼 보인다. 역사를 알면 현재가 필연처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