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구독이 맞는 고객 vs 안 맞는 고객
플로우웍스를 운영하면서 깨달은 게 있다. 디자인 구독 모델이 모든 고객에게 맞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어떤 고객은 구독을 시작하자마자 척척 활용한다. 반면 어떤 고객은 아무리 좋은 디자이너를 배정해줘도 뭔가 안 맞는다. 서비스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다. 구독 모델 자체가 그 고객의 업무 방식과 맞지 않는 것이다.
구독이 잘 맞는 경우
1. 기획안이 명확하고 일을 잘 시키는 경우
디자인 구독의 본질은 "요청-결과물" 구조다. 고객이 명확한 기획안을 주면 디자이너가 결과물을 만든다. 이게 끝이다.
기획안이 명확하다는 건 뭘까. 디자인 사이즈, 들어갈 내용, 레퍼런스, 원하는 톤앤매너가 정리되어 있다는 거다. 이런 고객은 디자이너가 바로 작업에 들어갈 수 있다. 커뮤니케이션 비용이 적고, 결과물도 빠르게 나온다.
반대로 "알아서 예쁘게 해주세요"라고 하는 고객은 어렵다. 디자이너가 방향을 잡아야 하고, 수정도 많아지고, 서로 시간이 낭비된다. 구독이 안 맞는 게 아니라 일을 시키는 방식이 안 맞는 거다.
2. 디자인 종류가 다양한 경우
상세페이지, 배너, SNS 소재, 브로슈어, 명함, 포스터. 디자인 종류가 다양한 고객은 구독이 딱 맞다.
보통 이런 고객들은 디자인 종류마다 다른 디자이너를 써왔다. 상세페이지 잘하는 디자이너가 명함을 잘하는 건 아니니까. 그래서 매번 새로운 디자이너를 찾고, 연락하고, 단가를 협상했다. 번거롭다.
구독은 이 문제를 해결한다. 어떤 디자인이든 요청만 하면 된다. 작업 종류에 맞는 디자이너가 알아서 배정된다. 광고 대행사들이 플로우웍스를 많이 찾는 이유도 이것 때문이다. 디자인 종류가 다양하고, 매번 외주 찾는 게 번거로우니까.
3. 일의 양이 들쭉날쭉할 때
어떤 달은 디자인이 10개 필요하고, 어떤 달은 2개만 필요하다. 이런 고객에게 정규직 디자이너는 부담이다. 일이 없는 달에도 월급은 나가니까.
구독은 유동적이다. 바쁠 때는 동시에 여러 요청을 넣고, 한가할 때는 요청을 줄이면 된다. 고정 인건비 없이 필요한 만큼만 쓸 수 있다. 일의 양이 예측 불가능한 고객일수록 구독이 더 효율적이다.
구독이 안 맞는 경우
UI/UX처럼 매일 고민해야 하는 업무
UI/UX 디자인은 구독과 잘 안 맞는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협업 밀도가 높다. UI/UX 디자이너는 매일 내부 회의에 참여하고, 개발자와 실시간으로 소통하고, 기획자와 계속 피드백을 주고받는다. 외부 구독 디자이너가 이런 밀도 높은 협업에 끼어들기가 어렵다. 슬랙에서 계속 호출되고, 회의에 들어가고, 맥락을 공유받아야 하는 역할은 내부 인력이 맞다.
둘째, 요청-결과물 구조가 안 맞는다. UI/UX는 명확한 기획안을 받아서 결과물을 만드는 게 아니다. 디자이너가 스스로 문제를 발견하고, 개선점을 찾고, 매일매일 고민해야 한다. "이 버튼 위치가 맞나?", "이 플로우가 사용자에게 혼란을 주지 않나?" 같은 질문을 스스로 던져야 한다.
이건 외부 디자이너한테 요청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제품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고, 매일 같은 디자이너가 고민해야 하는 업무다. 구독 모델의 유동적인 디자이너 배정과는 맞지 않는다.
결론
디자인 구독이 만능은 아니다. 기획안이 명확하고, 디자인 종류가 다양하고, 일의 양이 들쭉날쭉한 고객에게는 최적이다. 하지만 UI/UX처럼 매일 협업하고, 스스로 고민해야 하는 업무에는 맞지 않는다.
자기 상황이 어디에 해당하는지 생각해보면 구독이 맞을지 아닐지 판단할 수 있다. 맞지 않는 고객에게 억지로 구독을 권하지 않는다. 서로 시간 낭비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