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 해부도 - 오비탈과 스핀, 그리고 탄소 하나를 끝까지 그려보기
원자를 검색하면 가운데 핵이 있고 전자가 행성처럼 궤도를 도는 그림이 나온다. 1913년 보어가 만든 모형이고 당시로는 큰 진전이었지만, 지금 기준으로는 거의 모든 부분이 틀렸다. 무엇이 틀렸는지 하나씩 걷어내면서 실제 모습을 그려보자. 이 글 중간에는 탄소의 전자 구름을 직접 돌려볼 수 있는 뷰어가 들어가 있다.
전자는 궤도를 돌지 않는다
실제 전자는 궤도라는 선 위에 없다. 어디에 있다고 말할 수 없고, "이 근처에 있을 확률이 얼마"라는 형태로만 존재한다. 그래서 정확한 그림은 선이 아니라 안개 다.
궤도 그림이 왜 문제인지는 뒤에서 마디(node)를 다룰 때 결정적으로 드러난다. 전자가 있을 확률이 정확히 0인 지점이 원자 안에 있는데, 궤도를 도는 공이라면 그런 게 존재할 수 없다.
핵을 실제 비율로 그릴 수 있는 배율은 없다
교과서 그림의 더 큰 거짓말은 핵이 너무 크게 그려져 있다는 점이다. 원자 지름과 핵 지름의 비는 약 10만 배 다.
원자를 축구장(100m) 크기로 키우면 핵은 경기장 중앙에 놓인 1mm 알갱이가 된다. 나머지는 전부 비어 있다. 부피로 따지면 핵은 원자의 1000조분의 1 정도다. 그런데 질량은 99.9% 이상이 그 알갱이에 있다. 양성자 하나가 전자보다 1,836배 무겁기 때문이다.
이걸 어떻게 알았냐면, 1911년 러더퍼드가 금박에 알파 입자를 쏘았다. 거의 전부가 그대로 통과했고 극소수만 크게 튕겨 돌아왔다. 원자가 꽉 찬 덩어리라면 있을 수 없는 결과였고, 텅 빈 공간 안에 아주 작고 단단한 뭉치가 있다는 결론이 여기서 나왔다.
핵은 스스로 터져야 하는데 안 터진다
핵 안에는 양성자(전하 +1)와 중성자(전하 0)가 뭉쳐 있다. 여기서 이상한 점이 생긴다. 양성자는 전부 +다. 같은 부호끼리는 밀어내니까 핵은 즉시 흩어져야 하는데 안 흩어진다.
전기력보다 훨씬 센 다른 힘이 있기 때문이고, 그걸 강한 핵력 이라고 부른다. 대신 이 힘은 사거리가 극도로 짧아서 핵 크기를 넘어가면 사라진다.
양성자를 하나 열어보면 더 작은 쿼크 세 개가 나온다. 조합만 하나 다른 게 중성자다.
양성자 = u + u + d → ⅔ + ⅔ − ⅓ = +1
중성자 = u + d + d → ⅔ − ⅓ − ⅓ = 0
전하 +1과 0의 차이가 이 조합 하나에서 나오고, 그게 결국 원소의 정체를 결정한다. 쿼크는 홀로 떼어낼 수 없어서 항상 이렇게 뭉쳐 있다. 반면 전자는 열어봐도 아무것도 안 나온다. 더 쪼개지지 않는 기본 입자다.
확률 구름의 실제 모양
확률 구름이라고 하면 뿌연 공만 떠오르지만 실제 모양은 정해져 있고 종류가 몇 가지뿐이다. 그 모양 하나하나를 오비탈 이라고 부른다.
s는 공 모양이다. 껍질(구면)이 아니라 속이 채워진 덩어리라는 점이 중요하다. 핵에 가까울수록 진하고 멀어질수록 흐려지는 안개 공이다.
p는 아령 모양이고 서로 직각인 세 방향으로 하나씩 있다. 여기서 오해하기 쉬운 지점이 있다. p가 3방향이라고 하면 "전자 세 개가 서로 직각으로 놓여 있다"고 읽게 되는데 그게 아니다. 직교하는 것은 전자가 아니라 구름이 뻗어 있는 방향 이다.
아령 하나는 부피를 가진 영역이고 전자는 그 안 어디든 있을 수 있다. 축 위의 한 점에 박혀 있는 게 아니다. 애초에 전자에는 위치가 없으니 선을 그을 수도 없다. 그런 아령이 서로 직각인 세 방향으로 하나씩 있고, 전자는 그중 어느 아령에 사는지가 정해진다.
방 한가운데 서 있다고 상상하면 편하다. 좌우로 풍선 하나씩(x), 앞뒤로 하나씩(y), 위아래로 하나씩(z). 이 세 아령이 같은 중심을 공유하면서 서로 직각으로 꽂혀 있는 모양이다.
참고로 x·y·z 축의 방향은 자연이 정해준 게 아니다. 우리가 좌표를 어디로 잡느냐의 문제이고, 자기장을 걸면 그 방향이 기준이 된다. 자연이 고정한 건 셋이 서로 직교한다는 관계뿐이다.
p의 진짜 이상한 점
아령 두 쪽이 만나는 지점이 핵인데, 바로 그 자리에서 전자를 발견할 확률이 정확히 0이다. 전자가 왼쪽 풍선에도 있고 오른쪽 풍선에도 있는데 그 사이를 지나갈 수는 없다는 뜻이다.
궤도를 도는 공이라면 절대 설명이 안 되는 성질이고, 전자가 파동으로 기술된다는 가장 직관적인 증거다. 파동에는 진폭이 0이 되는 마디가 있고, 여기서는 그게 핵을 지나는 평면 전체다.
n 과 1s·2s·2p 는 같은 걸 쓰고 있다
표기가 헷갈리기 쉬운데 사실 같은 체계다. 앞의 숫자가 곧 층 번호 n이고, 뒤의 글자가 그 층 안의 세부 구획이다.
| 기호 | n (층) | 모양 | 칸 수 | 정원 |
|---|---|---|---|---|
| 1s | 1 | 공 | 1 | 2 |
| 2s | 2 | 공 | 1 | 2 |
| 2p | 2 | 아령 | 3 | 6 |
| 3d | 3 | 복잡 | 5 | 10 |
그래서 2p는 "2층의 아령 구획"이라는 뜻이다. 층이 올라갈수록 구획 종류가 늘어나서 1층은 s만, 2층은 s와 p, 3층은 s와 p와 d가 있다. 층 전체 정원은 2n²이라 1층이 2명, 2층이 8명, 3층이 18명이다.
글자는 모양의 약자가 아니다. 옛날 스펙트럼선의 겉모습을 sharp, principal, diffuse, fundamental로 부른 데서 온 역사적 이름이고 지금은 의미 없는 라벨이다.
그럼 수소 스펙트럼 얘기를 할 때는 왜 n만 쓸까. 수소는 전자가 딱 1개라서 같은 층 안의 2s와 2p가 에너지가 똑같다. 구분할 이유가 없으니 n만 쓰면 충분하다. 반면 전자가 여러 개인 원자는 전자들끼리 서로 밀치기 때문에 같은 층 안에서도 2s가 2p보다 살짝 낮아진다. 그래서 구획까지 적어야 한다.
스핀은 회전이 아니다
오비탈 하나에 전자가 몇 개까지 들어가는지가 정확히 2개로 정해져 있다. 이유가 스핀이다.
이름이 최악의 오해를 부르는 개념인데, 1925년에 발견됐을 때 "전자가 팽이처럼 자전하는 것"이라고 해석해서 스핀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런데 계산해보니 관측된 만큼의 각운동량을 자전으로 설명하려면 표면 속도가 광속을 훨씬 넘어야 했다. 게다가 전자는 크기가 없는 점입자다. 돌 만한 몸통이 아예 없다.
결론은 스핀이 무언가 돌고 있는 게 아니라 전자가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는 고유한 성질 이라는 것이다. 질량, 전하와 같은 층위다. 실용적으로는 이렇게 생각하면 된다. 전자는 아주 작은 자석을 하나씩 갖고 태어난다.
특이한 점은 방향이 두 개뿐이라는 것이다. 보통 나침반 바늘은 아무 방향이나 가리킬 수 있는데, 전자의 스핀을 측정하면 항상 위 또는 아래만 나온다. 중간값이 없다. 1922년 슈테른-게를라흐 실험에서 은 원자 빔을 자기장에 통과시켰더니 스크린에 연속적인 띠가 아니라 정확히 두 점이 찍혔다.
그래서 주기율표가 생긴다
같은 자리에 전자 둘이 못 앉는다는 규칙이 있다. 그런데 스핀이 위/아래 두 가지니까 한 자리에 정확히 2개 가 앉을 수 있다. 위 스핀 하나, 아래 스핀 하나. 셋은 안 된다.
그래서 전자들이 층마다 차곡차곡 쌓이고, 원소마다 채워진 모양이 달라지고, 그 모양이 성질을 결정한다. 주기율표의 생김새가 전부 이것 때문이다. 스핀이 없었다면 모든 전자가 최저층에 몰려버려서 원소 구분도 화학 반응도 없었다.
바깥층에 빈자리가 몇 개 남았는지가 결합 가능 수를 정한다. 수소는 1층 정원 2 중 1개를 채워서 빈자리 1개, 헬륨은 꽉 채워서 0개라 아무 반응도 안 한다. 탄소는 2층(정원 8)에 4개를 채워서 빈자리 4개, 산소는 6개를 채워서 빈자리 2개다. 그래서 물이 H₂O가 되고 탄소가 결합 4개를 만든다.
일상에서 스핀을 보는 곳도 많다. 냉장고 자석은 철 안의 전자 스핀들이 한 방향으로 정렬해 작은 자기장들이 합산된 결과다. 가열하면 자성을 잃는 것도 열이 그 정렬을 흐트러뜨리기 때문이다. MRI는 몸속 수소 원자핵의 스핀을 자기장으로 정렬시키고 전파로 뒤집은 뒤 되돌아올 때 나오는 신호로 영상을 만든다.
탄소 하나를 끝까지 그려보면
탄소는 전자가 6개다. 기호로 쓰면 1s² 2s² 2p² — 1s에 2개, 2s에 2개, 2p에 2개다. 층으로 보면 n=1에 2개, n=2에 4개다.
아래 뷰어가 그 여섯 개를 실제 확률밀도로 렌더링한 것이다. 등확률면(교과서의 매끈한 아령)을 만들지 않고 |ψ|²를 그대로 안개로 누적했다. 오비탈을 하나씩 켜고 끌 수 있다.
크기 비율은 임의로 정한 게 아니다. 슬레이터 규칙으로 계산한 유효 핵전하를 그대로 넣었는데, 탄소는 1s가 5.67이고 2s·2p가 3.14다. 이 차이가 1s를 2s보다 7배쯤 가깝게 끌어당긴다. 화면에서 보이는 크기 차이가 그 숫자에서 나온 결과다.
뷰어에서 확인해볼 것
2s만 켜고 안개 감도를 2 이상으로 올리면 밝은 안쪽 덩어리와 흐린 바깥 껍질 사이에 어두운 고리가 뜬다. 확률이 정확히 0이 되는 마디 구면을 옆에서 본 단면이다. 2s는 통짜 공이 아니라 공 속에 공이 든 구조라는 뜻이고, n이 커질수록 이 껍질이 하나씩 늘어난다.
2px만 켜고 위상 ± 색으로 바꾸면 두 로브의 색이 반대로 갈린다. ψ의 부호가 다르다는 표시이고, 결합할 때 상대 원자와 부호가 맞는지가 결합 성립을 좌우한다. 아령 축이 화면과 나란해지도록 돌리면 두 로브 사이에 검은 띠가 드러난다. 그게 위에서 말한 x = 0 평면 전체의 마디다.
2p 세 방향 프리셋 을 누르면 방향성이 사라지고 전체가 다시 둥글어진다. 네온이나 아르곤처럼 p가 꽉 찬 원소가 방향성 없이 둥글고 반응하지 않는 이유가 그림으로 보인다.
실제 밀도 비율 을 켜면 1s만 남고 나머지가 거의 사라진다. 기본값은 오비탈마다 밝기를 맞춰놨는데, 이걸 끄면 물리적으로 정직한 비율이 나온다. 전자 6개 중 2개가 핵에 딱 붙어 있고 화학 반응에 참여하는 건 바깥의 흐릿한 쪽이라는 게 눈에 들어온다. 교과서 그림에서는 이 비율이 절대 안 보인다.
2p 전자 2개가 한 아령에 몰리지 않는 이유
2p에 전자가 2개면 아령 하나에 둘(↑↓)이 앉을 수도 있는데 그러지 않는다. 전자끼리는 같은 −전하라 서로 밀어내므로 빈 아령부터 하나씩 차지하는 편이 에너지가 낮다. 그래서 x와 y에 각각 하나씩 들어가고 스핀도 같은 방향으로 나란히 선다. 훈트 규칙이라고 부른다.
결합할 때는 이 모양이 아니다
위 그림은 혼자 떠 있는 탄소의 모습이다. 그런데 앞에서 탄소의 결합 수를 4라고 했는데 이 그림에는 혼자 앉은 전자가 2개뿐이다. 모순처럼 보인다.
실제로 결합할 때 탄소는 2s와 2p를 섞어 4개의 똑같은 모양으로 재배열 한다. sp³ 혼성이라고 부른다. 결과는 네 방향으로 균등하게 뻗은 로브 4개이고, 서로 109.5°를 이루는 정사면체 배치가 된다. 메탄(CH₄)의 수소 4개가 정사면체 꼭짓점에 붙는 이유다.
그리고 섞는 방식이 달라지면 결과도 달라진다. 2s에 2p 셋을 섞으면(sp³) 정사면체 3차원 그물이 되어 다이아몬드가 되고, 2p 둘만 섞으면(sp²) 평면 120° 배치가 되어 층층이 쌓인 흑연과 그래핀이 된다.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물질과 연필심이 같은 원소인 이유가 오비탈을 섞는 방식 하나 차이다.
정리하면 원자의 모양이 분자의 모양을 정하고, 분자의 모양이 화학을 정한다. 물 분자가 104.5°로 꺾인 것도 같은 이유다.
그리고 빛은 여기서 나온다
전자는 층 사이 중간에 머물 수 없어서, 에너지를 받아 위층으로 올라갔다가 떨어질 때 두 층의 간격에 딱 맞는 광자를 하나 뱉는다. 간격이 정해져 있으니 나오는 빛의 색도 정해진다.
수소의 경우 n=3에서 2로 떨어지면 656nm 빨강, 4에서 2로 떨어지면 486nm 청록, 5에서 2로 떨어지면 434nm 남보라가 나온다. 발머 계열이라고 부르고, 수소 기체관이 분홍빛으로 보이는 게 이 세 색이 섞인 결과다. n=1로 떨어지는 건 낙차가 커서 자외선이고 n=3으로 떨어지는 건 적외선이라 눈에 안 보인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건 도착지가 n=2인 계열뿐이다.
이게 원소마다 고유한 색을 내는 이유이고, 별빛 스펙트럼만 보고 성분을 알아내는 원리다. 헬륨은 지구에서 발견되기 전에 태양 스펙트럼에서 먼저 발견됐다.
이어서
빛과 복사가 무엇인지는 뉴턴에서 광자까지에서, 그 빛을 인공적으로 만드는 원리는 결맞음과 레이저에서 다뤘다. 위 뷰어를 어떻게 구현했는지는 원자 오비탈을 셰이더로 볼륨 렌더링하기에 정리해뒀다.
참고
- Atomic orbital - Wikipedia — 오비탈의 모양과 양자수
- Rutherford scattering experiments - Wikipedia — 핵이 작다는 것을 밝힌 실험
- Spin (physics) - Wikipedia — 스핀이 자전이 아닌 이유
- Stern–Gerlach experiment - Wikipedia — 스핀이 두 값만 갖는다는 증거
- Hund's rules - Wikipedia — 전자가 빈 오비탈부터 채우는 규칙
- Orbital hybridisation - Wikipedia — sp³·sp² 혼성과 분자 구조
- Balmer series - Wikipedia — 수소가 내놓는 가시광선 계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