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맞음과 레이저, 그리고 들뜬 상태의 원자
전구와 레이저의 차이가 밝기라고 생각하기 쉽다. 아니다. 전구를 아무리 밝게 만들어도 철판을 자를 수 없고 달까지 쏴서 되돌아오게 할 수 없다. 차이는 결맞음 하나다. 이 개념을 이해하면 레이저의 작동 원리와 양자컴퓨터가 어려운 이유가 같은 설명으로 묶인다.
결맞음은 박자다
한마디로 하면 박자가 맞아 있는 상태다.
관중 만 명이 각자 아무 때나 박수를 치면 웅성거리는 소음이 된다. 같은 만 명이 박자를 맞추면 건물이 울린다. 손뼉 개수도 들인 힘도 똑같은데 결과가 다르다. 차이는 딱 하나, 박자가 맞았는지 여부다.
물리 용어로는 위상 이라고 한다. 파동은 진폭(세기)과 파장(색)과 위상으로 기술되는데, 위상은 지금 그 파동이 주기 중 어디쯤에 있는지를 말한다. 파동 두 개를 겹치면 위상 관계에 따라 결과가 완전히 갈린다. 꼭대기와 꼭대기가 만나면 두 배로 커지고, 꼭대기와 골이 만나면 서로 지워진다. 이게 간섭이고, 간섭은 위상 관계가 안정적일 때만 관찰된다.
전구와 레이저
뜨거운 물체가 빛나는 이야기를 앞에서 했는데, 그 빛은 결맞음이 없다. 필라멘트 속 원자 하나하나가 서로 아무 상의 없이 제멋대로 광자를 뿜기 때문이다. 위상이 완전히 무작위라, 결맞음이 유지되는 거리가 수 마이크로미터 수준밖에 안 된다. 햇빛도 마찬가지다.
레이저는 광자들이 전부 같은 위상으로 출렁인다. 그래서 퍼지지 않고 직진하고, 한 점에 모으면 철판을 자르고, 홀로그램과 간섭계를 만들 수 있다. 밝기 문제가 아니라 위상 문제다.
레이저는 어떻게 만드나
핵심은 위상을 맞추는 게 아니라 이미 있는 광자를 복사하는 것 이다.
원자는 에너지를 받으면 들뜬 상태가 되고 나중에 광자를 뱉으며 내려온다. 뱉는 방식이 두 가지다.
자발 방출 은 들뜬 원자가 제 마음대로, 아무 때나, 아무 방향으로 광자를 뱉는 것이다. 전구가 이거다. 원자마다 제멋대로니 위상이 다 다르다.
유도 방출 은 들뜬 원자 옆으로 광자가 지나가면 그 원자가 자극을 받아 광자를 뱉는데, 이때 나오는 광자가 지나간 광자와 파장·방향·위상까지 완전히 똑같은 경우다. 복제품이다. 아인슈타인이 1917년에 이론적으로 예측한 현상이다.
LASER라는 이름 자체가 이 설명이다. Light Amplification by Stimulated Emission of Radiation, 유도 방출에 의한 빛의 증폭.
반전 분포라는 조건
문제가 하나 있다. 광자가 지나갈 때 원자가 항상 광자를 뱉는 게 아니다. 바닥 상태의 원자를 만나면 오히려 광자를 흡수 해버린다. 그리고 둘의 확률은 정확히 같다.
그래서 매질 속에 바닥 상태 원자가 많으면 흡수가 이겨서 빛이 사그라들고(보통의 물질), 들뜬 상태 원자가 많으면 복제가 이겨서 빛이 증폭된다(레이저). 문제는 자연 상태에서는 항상 바닥 상태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이다. 억지로 뒤집어야 하고, 그 상태를 반전 분포 라고 부른다. 이게 레이저의 진짜 조건이다.
여기에 숨은 제약이 하나 더 있다. 에너지 준위가 딱 두 개뿐인 원자로는 반전 분포를 못 만든다. 올리는 만큼 바로 떨어져서 절반을 넘길 수 없다. 그래서 실제 레이저는 준안정 상태, 즉 원자가 유난히 오래 머무는 층이 있는 물질을 쓴다. 위로 올려놓으면 그 층에 한동안 고여 있어서 개수가 쌓인다. 레이저 매질을 아무 물질로나 못 만드는 이유가 이거다.
거울 두 장이 하는 일
매질을 한 번 통과하는 것만으로는 증폭이 부족해서 양쪽에 거울을 마주 세워 광자를 왕복시킨다. 이 거울이 두 가지 일을 한다.
하나는 증폭 폭주다. 광자가 매질을 수백에서 수천 번 통과하며 계속 복제된다. 한쪽 거울은 완전 반사가 아니라 99% 정도만 반사하게 만들어서 나머지가 빠져나오고, 그게 우리가 보는 빔이다.
다른 하나가 결맞음 완성에 결정적이다. 축에서 비스듬히 나온 광자는 거울에 몇 번 튕기다 옆으로 빠져나가 사라진다. 축 방향으로 정확히 진행하는 광자만 살아남으니까 빔이 퍼지지 않는다. 그리고 두 거울 사이를 왕복하는 길이에 파장이 정수배로 딱 맞아떨어지는 것만 계속 보강되어 살아남으니까 색이 극단적으로 순수해진다.
전체 흐름은 이렇게 된다.
펌핑으로 원자를 들뜬 상태로 올림
→ 그중 하나가 우연히 자발 방출 (위상 무작위)
→ 하필 축 방향으로 나온 그 광자가 거울 사이를 왕복
→ 지나는 길의 들뜬 원자들이 똑같은 복제품을 계속 생산
→ 축을 벗어난 것은 탈락, 살아남은 건 전부 최초 광자의 복제품
→ 1% 가 새어나와 빔이 된다
재밌는 건 최초 광자의 위상은 완전히 무작위라는 점이다. 위상을 정해준 게 아니라 아무 위상이나 하나 잡아서 전부 그걸로 통일시킨 결과가 레이저다.
들뜬 상태는 어떻게 만드나
원자 안에서 전자는 정해진 층에만 있을 수 있다. 건물 계단처럼 1층, 2층에는 서 있을 수 있지만 2.4층은 존재하지 않는다. 가장 낮은 층에 있는 게 바닥 상태, 위층으로 올라가 있는 게 들뜬 상태다. 층 간격만큼의 에너지를 어떤 형태로든 밀어넣으면 올라간다.
빛으로 때리는 방법이 있다. 딱 맞는 에너지의 광자를 쬐면 원자가 삼키고 전자가 올라간다. 형광펜이 이거다. 눈에 안 보이는 자외선을 흡수해 올라갔다가 내려올 때 눈에 보이는 형광색을 뱉는다.
전기로 때리는 방법도 있다. 전압을 걸어 가속시킨 전자를 원자에 박아넣으면 얻어맞은 원자의 전자가 튕겨 올라간다. 형광등과 네온사인이 이 방식이다. 형광등은 수은 증기를 이렇게 들뜨게 해서 자외선을 만들고, 그 자외선이 유리관 내벽의 형광 물질을 다시 들뜨게 해서 흰 빛이 나온다. 2단 구조다.
열로 흔드는 방법은 불꽃 반응이다. 온도가 높으면 원자들이 격렬하게 충돌하면서 서로를 들뜨게 한다. 불꽃놀이의 빨강은 스트론튬, 초록은 바륨, 청록은 구리다. 화약이 그 금속을 순간적으로 뜨겁게 만들고, 내려오면서 각자 고유한 색을 뱉는다.
화학 반응 에너지를 직접 쓰는 방법도 있다. 형광봉을 꺾으면 두 액체가 섞여 반응하며 빛이 나는데, 열이 아니라 화학 에너지가 곧바로 빛으로 간다. 반딧불이와 심해 생물의 발광이 같은 원리다.
야광 스티커가 오래 빛나는 이유
들뜬 상태에 머무는 시간은 보통 1억분의 1초 수준이다. 그래서 형광펜은 빛을 안 쬐면 바로 안 빛난다.
그런데 어떤 층은 물리적 규칙상 내려오기가 까다로워서 유난히 오래 머문다. 앞에서 말한 준안정 상태다. 밀리초에서 심지어 몇 시간까지 버틴다. 야광 별 스티커가 정확히 이거다. 낮에 빛을 흡수해 전자를 준안정 층에 올려놓고, 밤에 천천히 흘려보내며 몇 시간 동안 빛난다. 형광(즉시 방출)과 인광(지연 방출)의 차이가 이 층 하나 차이다.
그래서 레이저 매질은 준안정 층이 있는 물질을 고른다. 최초의 레이저인 루비 레이저는 크롬 이온의 준안정 층에 약 3밀리초 머무는 성질을 이용하고, He-Ne 레이저는 전기로 헬륨을 준안정 상태로 올린 뒤 네온과 충돌해 에너지를 넘겨준다. 레이저 포인터와 광통신에 쓰는 반도체 레이저는 전류를 직접 흘려서 만들기 때문에 작고 싸다.
결어긋남, 그리고 양자컴퓨터
여기까지는 빛 이야기였고, "물체가 결맞음 상태에 있다"고 할 때는 조금 다른 맥락이다.
양자역학에서 입자의 상태도 파동처럼 기술되고 따라서 위상을 가진다. 입자 하나가 두 경로에 걸친 중첩 상태가 되고, 그 두 경로 사이의 위상 관계가 살아 있으면 나중에 서로 보강하거나 지우면서 간섭무늬를 만든다. 그 위상 관계가 살아 있는 상태가 양자 결맞음이다.
여기서 중요한 구분이 있다. 두 경로에 걸쳐 있고 위상 관계가 살아 있는 결맞은 중첩 은 간섭무늬를 만들고, 실제로는 한쪽인데 우리가 모를 뿐인 단순 혼합 은 간섭무늬를 만들지 않는다. 이 둘은 실험으로 구별된다. 그래서 "양자적"이라는 말은 "확률적"이나 "우리가 모른다"와 전혀 다르다.
왜 큰 물체는 결맞지 않나
물체가 주변 환경(공기 분자, 지나가는 광자, 열복사)과 상호작용하면 위상 정보가 환경으로 새어 나간다. 그러면 그 물체만 떼어놓고 볼 때 결맞은 중첩이 단순 혼합처럼 되어버린다. 이게 결어긋남 이다. 파괴되는 게 아니라 정보가 환경으로 흩어져 회수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문제는 이 과정이 물체가 클수록 압도적으로 빨라진다는 점이다. 공기 중 먼지 한 알조차 초당 수억 번씩 공기 분자와 부딪히기 때문에 추산으로 10⁻³¹초 수준에서 결어긋난다. 진공에 넣고 빛을 차단해도 우주배경복사만으로 여전히 찰나다. 그래서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원리적으로 금지된 게 아니라 그 상태가 유지되는 시간이 관측 불가능하게 짧을 뿐이다.
거꾸로 조건을 극단으로 만들면 큰 것도 결맞을 수 있다. 초전도체는 전자들이 쿠퍼쌍을 이뤄 하나의 결맞은 상태를 공유하고, 그래서 저항이 정확히 0이 된다. 보스-아인슈타인 응축은 원자 수백만 개가 같은 양자 상태로 떨어져 하나의 거대 물질파처럼 움직인다. 원자 2000개 규모의 분자로 이중 슬릿 간섭무늬를 만든 실험도 있다.
그래서 양자컴퓨터가 어렵다
큐비트의 계산이란 결맞은 중첩을 만들고 간섭을 조작해서 원하는 답의 진폭만 키우는 일이다. 결어긋나는 순간 그냥 확률적인 고전 비트로 전락해 계산이 무의미해진다.
그래서 초전도 큐비트를 10mK, 우주 배경보다 차가운 온도까지 냉각하고 진공과 자기 차폐로 감싼다. 그렇게 해도 유지되는 결맞음 시간은 수십에서 수백 마이크로초 수준이라 그 안에 연산을 끝내야 한다. 양자컴퓨팅이 어려운 이유의 태반이 결맞음 유지 싸움이다.
마지막으로, 빛에서는 왜 결맞음이 쉬운가
광자는 보손 이라 같은 상태에 몇 개든 겹쳐 쌓일 수 있다. 오히려 이미 그 상태에 광자가 많을수록 새 광자가 그 상태로 들어가려는 경향이 커진다. 그래서 유도 방출이 눈사태처럼 가속된다.
전자는 반대다. 페르미온 이라서 같은 상태에 두 개 이상 못 들어간다. 그 덕분에 전자들이 원자 안에서 층층이 쌓이고, 그게 화학과 물질의 다양성을 만든다. 같은 상태에 몰려도 되는 성질 덕분에 레이저가 가능하고, 몰릴 수 없는 성질 덕분에 물질이 존재하는 셈이다.
전자가 층층이 쌓이는 규칙과 그게 만드는 원자의 구조는 원자 해부도에서 이어진다.
참고
- Stimulated emission - Wikipedia — 유도 방출과 레이저 증폭
- Population inversion - Wikipedia — 반전 분포 조건
- Coherence (physics) - Wikipedia — 시간적·공간적 결맞음
- Quantum decoherence - Wikipedia — 결어긋남 시간 추산
- Metastability - Wikipedia — 준안정 상태와 인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