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는 왜 자석인가 - 각운동량, 정렬, 그리고 스스로 돌아가는 쇳덩이

English (N/A)

원자 해부도에서 스핀을 다루면서 이렇게 썼다. "전자는 아주 작은 자석을 하나씩 갖고 태어난다." 실용적으로는 맞는 문장인데, 다시 읽어보니 이해가 안 되는 게 당연했다.

바로 앞에서 스핀은 회전이 아니라고, 크기 없는 점입자라서 돌 몸통이 아예 없다고 못을 박아놓고, 다음 문장에서 갑자기 자석이 등장한다. 독자 입장에서는 "회전이 아니라면서 왜 자석이 나오지?"가 될 수밖에 없다. 자석이라는 이미지 자체가 뭔가 돌고 있다는 직관에서 나온 거니까.

빠진 단계를 채워보자. 그러다 보면 쇳덩이가 아무도 안 건드렸는데 스스로 돌아가는 이야기까지 간다.

각운동량은 회전의 양이다

우선 각운동량부터. 이름이 어려워 보이지만 뜻은 단순하다. 회전의 양 이다.

직선 운동량(p = mv)이 "직진하는 물체를 멈추기 얼마나 어려운가"를 재는 값이라면, 각운동량은 "회전하는 물체를 멈추기 얼마나 어려운가"를 재는 값이다. 무거울수록 크고, 빠를수록 크고, 회전축에서 멀리 퍼져 있을수록 크다.

중요한 특징은 마음대로 사라지지 않는다 는 것이다. 없어지는 게 아니라 옮겨갈 뿐이다.

바퀴 달린 의자에 앉아서 몸을 왼쪽으로 확 비틀면 의자가 오른쪽으로 돌아간다. 피겨 선수가 팔을 오므리면 갑자기 빨라진다. 총량은 그대로인데 질량이 축 가까이 모이니까 속도가 올라가서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헬리콥터에 꼬리 로터가 달려 있는 것도 같은 이유다. 메인 로터를 한쪽으로 돌리면 몸체가 반대로 돌아가버리니까 그걸 상쇄해줘야 한다.

회전에 방향을 붙이는 법 — 오른손 법칙

여기서 하나 정리해둬야 뒤에 나오는 얘기가 통한다. 각운동량에는 크기만 있는 게 아니라 방향 도 있다.

직진하는 물체는 방향이 명확하다. 오른쪽으로 가면 화살표를 오른쪽으로 그리면 된다. 회전은 그게 안 된다. 도는 팽이의 부위마다 움직이는 방향이 다르다. 오른쪽은 뒤로 가고 왼쪽은 앞으로 가고 앞쪽은 오른쪽으로 간다. 어느 걸 대표로 뽑아도 틀린다.

그런데 딱 하나 움직이지 않는 게 있다. 회전축 이다. 그래서 회전은 축으로 설명한다.

문제가 하나 남는다. 축은 선이고 선에는 끝이 두 개다. 시계 방향으로 도는 팽이와 반시계 방향으로 도는 팽이는 축이 완전히 같아서, 축만으로는 구별이 안 된다. 그래서 축의 두 끝 중 어느 쪽을 화살표 방향으로 쓸지 약속을 정해야 한다. 그 약속이 오른손 법칙 이다.

오른손을 펴서 물체가 도는 방향으로 손가락을 감아쥔다. 그때 삐죽 나온 엄지가 가리키는 쪽 이 그 회전의 화살표 방향이다. 직접 해보면 바로 확인된다. 오른손 엄지를 위로 세우고 손가락을 감아쥔 다음 위에서 내려다보면, 손가락이 반시계 방향으로 감겨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정리된다.

  • 위에서 봤을 때 반시계 방향으로 돈다 → 화살표는
  • 위에서 봤을 때 시계 방향으로 돈다 → 화살표는 아래

이름이 오른손인 이유는 나사에서 왔다. 일반 나사를 시계 방향으로 돌리면 들어가는데, 오른손으로 그 방향을 감아쥐면 엄지가 정확히 나사가 박히는 쪽을 가리킨다. 페트병 뚜껑을 닫을 때도 같다. 왼손으로 정해도 되는 규칙이지만 그러면 모든 방향이 뒤집힌다. 전 세계가 오른손으로 통일한 것일 뿐이고 물리적 내용이 아니라 순수한 약속이다.

중요한 건 "각운동량이 위를 향한다"가 "위에서 내려다보면 반시계 방향으로 돌고 있다"의 줄임말 이라는 점이다. 아무것도 위로 움직이지 않는다. 뭔가 위로 올라가거나 위를 밀거나 하는 게 전혀 아니다. 회전 방향을 화살표 하나로 적어둔 기호다.

그럼 왜 굳이 화살표로 만드나. 더하고 상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방향 화살표끼리는 합쳐져 커지고 반대 방향끼리는 지워진다. 이 글 나머지에서 계속 나오는 정렬과 상쇄가 전부 이 덧셈이다. 회전을 화살표로 바꿔놓지 않으면 덧셈 자체가 불가능하다.

회전의 양과 도는 것은 다르다

여기서 한 발짝 나가야 한다.

우리는 보통 "회전의 양"과 "돌고 있는 것"을 같은 말로 쓴다. 도니까 양이 있는 거고, 양이 있으니 도는 거라고. 그런데 전자는 이 둘이 갈라진다. 회전의 양은 갖고 있는데, 도는 건 아니다.

배터리를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배터리를 아무리 들여다봐도 전기가 흐르는 게 보이지 않는다. 가만히 있는 검은 통이다. 그래도 전기를 갖고 있다는 건 확실한데, 왜냐하면 모터에 연결하면 돌아가니까다. 갖고 있다는 증거는 꺼내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전자도 똑같다. 도는 모습은 없다. 크기가 없어서 돌 몸통 자체가 없다. 그런데 회전의 양은 갖고 있다. 정확히 ħ/2 만큼이다. (ħ = 1.055×10⁻³⁴ J·s. 플랑크 상수의 단위가 각운동량 단위인 건 우연이 아니다.)

조금 더 들어가면, 물리학에서 각운동량의 정의는 애초에 "뭔가 돌고 있는 것"이 아니다. "공간에 특별한 방향이 없기 때문에 보존되는 양"이다. 우주의 물리 법칙은 어느 방향을 봐도 똑같고, 실험 장치를 30도 돌려놓고 다시 해도 결과가 같다. 이런 대칭성이 있으면 반드시 대응하는 보존량이 하나 생긴다는 정리가 있는데(뇌터 정리), 그렇게 나오는 보존량의 이름이 각운동량이다.

그래서 "무엇이 돌고 있는가"는 잘못된 질문이다. 옳은 질문은 "이 물체가 그 보존량의 몫을 얼마나 갖고 있는가"다. 회전은 각운동량을 갖는 여러 방식 중에 우리 눈에 익숙한 하나일 뿐이다.

전기 + 회전의 양 = 자석

이제 자석으로 이어진다.

전자석을 떠올려보자. 전선을 코일로 감고 전기를 흘리면 자석이 된다. 조건이 두 개다. 전기를 띠고 있을 것, 그리고 회전할 것.

전자는 전기를 띠고 있다(전하 −e). 그리고 회전의 양을 갖고 있다(ħ/2). 조건 두 개가 충족되니까 자석이 된다. 실제로 도는 모습이 없어도 상관없다. 필요한 건 도는 모습이 아니라 회전의 양이니까.

그래서 "작은 자석을 갖고 태어난다"는 말은 상상해보라는 비유가 아니다. 실제로 측정되는 값이다. 크기도 나와 있다. 보어 마그네톤 1개 정도(9.27×10⁻²⁴ J/T)다.

의미는 딱 하나다. 전자를 자기장 안에 넣으면 방향에 따라 힘을 받는다. 밀거나 당겨서 이동시키는 힘이 아니라 방향을 돌리는 힘이고, 이걸 돌림힘이라고 한다.

자기장 B ↓전자 하나NS돌림힘방향만 돌아간다나침반 바늘NS돌림힘방향만 돌아간다
자기장 속의 전자는 나침반 바늘과 완전히 같은 상황에 놓인다. 어디론가 끌려가는 게 아니라 제자리에서 방향이 자기장 쪽으로 돌아간다. 화살표의 머리 쪽이 N극, 꼬리 쪽이 S극이다. 전자 하나도 나침반 바늘과 똑같이 두 극을 함께 갖는다. 이 글의 그림은 모두 자기장을 위에서 아래로 걸었다.

사실 역사적 순서도 이쪽이 먼저였다. 자석처럼 행동한다는 걸 먼저 발견하고, 그걸 설명하려고 자전이라는 그림을 가져왔다가, 계산해보니 표면 속도가 광속을 넘어야 해서 그림만 폐기된 것이다. 자석 쪽이 오히려 원본 데이터다. 표현도 "자석을 갖고 있다"보다 전자 자체가 자석이다 가 정확하다. 질량이나 전하와 같은 층위의 성질이다.

자기장을 건다는 게 무슨 뜻인가

방금 "자기장 안에 넣으면"이라고 썼는데, 이게 뭘 하는 건지 짚어두자.

우선 자기장은 무언가 흘러가는 물질이 아니다. 공간의 각 지점에 "여기서는 이 방향, 이 세기"라는 성질이 부여된 상태다. 그림의 화살표는 뭐가 이동하는 경로가 아니라 그 지점의 성질을 표시한 기호다.

그럼 방향은 어떻게 정하나. 정의가 단순하다. 그 지점에 나침반 바늘을 놓았을 때 N극이 가리키는 쪽 이다. 그래서 위 그림처럼 "자기장을 위에서 아래로 걸었다"는 건 이런 뜻이다. 그 공간에 나침반을 가져다 놓으면 바늘의 N극이 아래를 향해 처진다.

그런 공간을 만드는 방법은 두 가지다. 코일 에 전기를 흘리면 코일 축 방향으로 자기장이 생긴다. 축을 세워놓으면 자기장도 수직이 되고, 전류를 반대로 흘리면 자기장도 뒤집힌다. 아래 장치 그림에서 막대를 감싸고 있는 파란 호가 이 코일이다. 아니면 막대자석 을 쓴다. 자기장은 자석 밖에서 N극에서 나와 S극으로 들어가니까, N극을 위에 두고 S극을 아래에 두면 그 사이 공간의 자기장이 아래를 향한다.

자기장이 아래를 향하는 게 이상해 보이면 지구를 생각하면 된다. 나침반이 수평으로만 움직이니까 지구 자기장도 수평일 것 같지만, 한국에서는 약 50도 아래로 기울어져 있다. 바늘이 축에 고정돼 있어서 안 보이는 것뿐이고, 실에 매달아 자유롭게 놔두면 N극 쪽이 아래로 처진다. 이걸 복각이라고 한다. 자북극에서는 거의 수직이라 나침반이 방향을 못 가리킨다.

N극은 어떤 성분이 아니다

그림에 N극과 S극을 표시했으니 이것도 정리해두자. 답이 좀 의외인데, N극은 성분이 아니다. 물질도 아니고 입자도 아니다.

가장 확실한 증거가 자석 자르기다. 막대자석에서 N극만 떼어내려고 반으로 자르면, N극 조각과 S극 조각이 나오지 않는다. 각각 N극과 S극을 다 가진 자석 두 개 가 나온다. 또 자르면 네 개가 되고 계속 그렇다. 원자 하나까지, 전자 하나까지 내려가도 마찬가지다. N극만 있는 물체는 지금까지 발견된 적이 없고, 찾으려는 시도는 계속 있었다(자기 단극자).

전기와 결정적으로 다른 지점이다. 전기에서는 +와 −를 분리할 수 있어서 "+ 전하"는 실제로 어떤 것이 갖는 성분이다. 자기에서는 그게 안 된다.

그럼 N극이 뭐냐면, 정렬된 방향의 머리 쪽 끝에 붙인 이름표 다. 화살표에 머리와 꼬리가 있는 것과 같다. 머리가 특별한 물질로 되어 있는 게 아니라 방향이 있으니까 양 끝이 구별되는 것뿐이다. 자석을 자르면 각 조각의 화살표에도 여전히 머리와 꼬리가 있으니 극이 다시 생기는 게 당연하다. 이름의 유래도 관습이다. 지구의 북쪽(north)을 가리키는 끝이라서 N이라고 불렀다. 덤으로 헷갈리는 사실 하나 — 나침반 N극이 지구 북쪽으로 끌리니까, 지구 북극 근처에 있는 건 자기적으로는 S극이다.

그래서 "N극이 자기장에 반응한다"는 표현도 정확하지 않다. 반응하는 건 자석 전체다. 균일한 자기장 안에서 N극 쪽은 자기장 방향으로 힘을 받고 S극 쪽은 반대 방향으로 받는데, 크기가 같고 방향이 반대다. 그래서 알짜 힘이 0이라 어디로도 이동하지 않는다. 대신 두 힘의 작용점이 떨어져 있으니 회전은 생긴다. 그게 돌림힘이고, 나침반 바늘이 제자리에서 방향만 바꾸는 이유다.

그럼 철못은 왜 자석에 끌려가나. 자기장이 균일하지 않을 때 만 그렇다. 자석 가까이 갈수록 자기장이 세지니까 철못의 두 끝이 받는 힘의 크기가 달라지고, 상쇄가 완전하지 않아서 알짜 힘이 남는다. 자석에 어느 정도 가까이 가야 갑자기 붙는 이유가 이거다. 멀리 있으면 자기장이 거의 균일해서 돌림힘만 받는다.

철 안에는 그 자석이 셀 수 없이 많다

그런데 평소 철못은 자석이 아니다. 안에 작은 자석이 가득한데도 그렇다.

방향이 제각각이어서 서로 상쇄되기 때문이다. 회전의 양에는 크기만 있는 게 아니라 방향도 있고, 반대 방향끼리 합치면 0이 된다. 100명이 사방팔방으로 당기면 아무리 힘을 써도 밧줄이 그 자리에 있는 줄다리기와 같다. 총량이 아니라 방향이 모이느냐가 문제인 거다.

정확히 말하면 완전히 무작위는 아니다. 실제 철에서는 전자들이 자기 구역(도메인) 단위로 뭉쳐 있다. 구역 안에서는 이미 방향이 맞아 있고, 구역끼리 방향이 달라서 상쇄된다.

여기에 자기장을 걸어보자. 아래가 1915년 아인슈타인과 드하스가 한 실험 장치다. 철 막대를 실에 매달아놓고 코일로 자기장을 걸어준다. 왼쪽은 막대를 잘라서 안을 본 것이고, 오른쪽은 막대를 밖에서 본 것이다.

아인슈타인–드하스 장치 · 1915철 막대 · 수직 현수
안에서 본 모습 — 전자 자기 모멘트
방향 제각각 · 총합 거의 0
밖에서 본 모습 — 막대 전체
B기준선SN회전각0.0°위에서 본 모습정지정지
정렬도0%
전자들의 각운동량 합0
막대 (회전 중인 몫)0
실·지지대로 넘어간 몫0
총합0
자기장 세기를 올리면 왼쪽에서 전자 모멘트가 아래로 정렬하고, 그 순간 오른쪽 막대가 반대 방향으로 흔들린다. 자화가 멎으면 실이 막대를 0도로 되돌리고, 막대가 갖고 있던 몫은 실을 타고 지지대로 넘어간다. 장부의 세 줄이 그 이동을 추적하는데 총합은 언제나 0이다. 회전 방향은 측면도로 판별할 수 없으니 오른쪽 아래 '위에서 본 모습' 원판을 보자. 정렬된 뒤에는 막대 아래쪽 끝에 N극, 위쪽 끝에 S극이 남는다. 막대 표면의 회색 세로선은 회전을 보이게 하려고 그은 기준선일 뿐 물리적 의미는 없다. 실제 실험의 회전각은 이보다 훨씬 작다.

정렬은 그냥 방향 맞추기다

슬라이더를 올렸을 때 벌어진 일이 정렬이다. 흩어져 있던 화살표들이 자기장 쪽으로 방향을 맞춘다.

나침반 바늘 여러 개를 책상에 흩어놓고 큰 자석을 가져가면 바늘들이 하나씩 돌아서 전부 같은 방향을 가리키는 것과 똑같다. 전자 하나하나가 위에서 본 돌림힘을 받으니까, 나침반 바늘 수십억 개가 동시에 방향을 맞추는 셈이다.

방향이 모이면 더 이상 상쇄되지 않는다. 그래서 두 가지가 동시에 벌어진다.

하나는 철못이 자석이 된다 는 것이다. 작은 자석들이 같은 방향을 보고 있으니 자기력이 합산돼서 밖에서도 느낄 만큼이 된다. 나머지 하나가 훨씬 이상한 일이다.

아무도 안 건드렸는데 막대가 돈다

정렬 전에는 전자들의 회전의 양이 사방으로 흩어져서 총합이 0이었다. 정렬 후에는 한쪽으로 모여서 총합이 0이 아니다. 그런데 이 양은 갑자기 생겨날 수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총합이 변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면 반대 몫이 어딘가에 나타나야 하는데, 나타날 곳이 막대 자신밖에 없다. 그래서 막대가 반대 방향으로 실제로 돌아간다. 실이 꼬일 정도로, 눈에 보이게.

배터리를 모터에 꽂았더니 축이 돌아간 것과 완전히 같은 상황이다. 전자가 갖고 있던 회전의 양이 눈에 보이는 거시적 회전으로 그대로 환전됐다. 이게 스핀이 말장난이 아니라는 직접 증거다. 형태만 다르고 단위도 보존 법칙도 팽이의 회전과 동일한, 같은 통화 라는 뜻이다. 현금과 계좌 잔액이 형태는 달라도 같은 돈인 것과 비슷하다.

어느 쪽으로 도나

자기장을 아래로 걸었는데 왜 회전 방향이 정해지는지 따라가보자. 부호가 두 번 뒤집힌다.

1. 자기 모멘트는 아래를 향한다. 자기장이 아래니까 그쪽으로 정렬한다. 뷰어 왼쪽 단면의 화살표가 이거다.

2. 그런데 각운동량은 위를 향한다. 전자는 전하가 음수라서 자기 모멘트와 각운동량이 서로 반대다. 모멘트가 아래면 회전의 양은 위다. 첫 번째 뒤집힘이다.

3. 막대의 각운동량은 아래를 향한다. 총합이 0을 유지해야 하니 막대는 반대 몫을 갖는다. 두 번째 뒤집힘이다.

4. 오른손 법칙을 적용한다. 각운동량 화살표가 아래를 향하면 위에서 내려다볼 때 시계 방향이다. 위 뷰어의 "위에서 본 모습" 원판이 그 방향을 보여준다. 측면도만으로는 앞면이 왼쪽으로 가는 것과 뒷면이 왼쪽으로 가는 것을 구별할 수 없어서 원판을 따로 붙였다.

코일 전류를 반대로 흘려 자기장을 위로 뒤집으면 회전도 반시계 방향으로 뒤집힌다.

도는 건 자화가 변하는 동안뿐이다

여기서 오해하기 쉬운 게 하나 있다. 막대가 계속 돌지 않는다.

각운동량 총합이 0에서 어떤 값으로 바뀌는 그 순간 에만 반대 몫이 생긴다. 자화가 최대에 도달해 더 이상 변하지 않으면 돌림힘이 사라지고, 꼬인 실이 막대를 원위치로 되돌린다. 뷰어에서 최대로 를 눌러보면 막대가 한 번 크게 흔들린 뒤 몇 초 만에 0도로 돌아온다. 자기장을 끄면 정렬이 풀리면서 반대 방향으로 흔들린다. 회전 방향은 "자화된 상태"가 아니라 "아래 방향으로 자화되는 과정"에 대응한다.

그럼 각운동량은 어디로 갔나. 실을 타고 지지대로, 결국 지구로 빠져나갔다. 뷰어 장부의 세 줄이 그걸 추적한다. 막대가 흔들리는 동안에는 막대 줄에 값이 잡혀 있다가, 멎으면 그 값이 실·지지대로 넘어간 몫 으로 옮겨간다. 어느 순간에도 총합은 0이다.

실제 실험에서는 이 회전량이 워낙 작아서 한 번 흔드는 걸로는 측정이 안 됐다. 자기장을 비틀림 진자의 고유 진동수에 맞춰 주기적으로 뒤집어 공진 을 일으켜서 진폭을 쌓았다. 뷰어의 회전각은 눈에 보이도록 크게 키운 값이다.

그럼 모든 쇠붙이가 같은 쪽으로 도나

방향의 부호가 재료와 무관하다는 건 사실이다. 부호는 딱 하나에서 나온다. 전자의 전하가 음수라는 것.

전하가 음수면 자기 모멘트와 각운동량이 항상 반대다. 스핀에서 오든 궤도 운동에서 오든 마찬가지다. 그래서 철이든 코발트든 니켈이든 페라이트든, 자기장을 같은 방향으로 걸면 같은 쪽으로 돈다.

예외가 하나 있는데 핵자성 이다. 양성자는 전하가 양수라서 모멘트와 스핀이 같은 방향이다. 원자핵 스핀을 정렬시켜 같은 실험을 하면 반대로 돈다. 다만 핵 자기 모멘트는 전자보다 세 자릿수쯤 약해서 일상적인 쇠붙이 얘기는 아니다.

다만 조건이 네 개 붙는다.

자기장 방향에 묶여 있다. "시계 방향"은 자기장을 아래로 걸었을 때의 답이다. 그러니 "모든 쇠붙이가 시계 방향"이 아니라 "자기장을 같은 방향으로 걸면 모든 쇠붙이가 같은 쪽으로 돈다"가 정확하다.

자화가 변하는 동안에만 돈다. 위에서 본 그 얘기다. 자기장을 끄면 반대로 돈다.

강하게 자화되는 재료여야 한다. 강자성체 얘기다. 오스테나이트계 스테인리스는 자석에 안 붙으니 이 실험이 안 되고, 알루미늄이나 구리는 상자성·반자성이라 효과가 무시할 수준이다. "모든 쇠붙이"에서 상당수가 빠진다.

크기는 재료마다 다르다. 방향은 같아도 같은 자화량에 대해 얼마나 도는지는 재료마다 다르다.

그리고 마지막 조건이 이 실험의 존재 이유였다

회전량과 자화량의 비를 재면 자기 모멘트가 각운동량의 몇 배인지 가 나온다. 자성이 전자의 궤도 운동에서 오면 그 비가 1 근처, 스핀에서 오면 2 근처다.

아인슈타인과 드하스는 앙페르의 분자 전류 가설을 확인할 생각이었으니 1을 기대했다. 나온 값은 2에 가까웠다. 철의 자성이 전자가 궤도를 도는 데서 오는 게 아니라는 뜻이었고, 스핀이라는 개념이 정식으로 등장하기 10년 전에 나온 초기 단서였다.

그러니까 이 실험은 "쇳덩이가 돈다"를 보여주려던 게 아니다. 어느 쪽으로 얼마나 도는지를 재서 자성의 정체를 알아내려던 것 이다.

나침반과 철못은 다른 일이 벌어진다

여기까지 오면 헷갈리기 쉬운 것 하나가 정리된다. 자석에 붙는 철못과 방향을 가리키는 나침반 바늘은 같은 일이 아니다.

나침반 바늘안이 이미 정렬돼 있다SN이미 자석이다자기장을 걸면 →NS바늘 전체가 돌아간다그냥 철못안이 흩어져 있다N극도 S극도 없다자기장을 걸면 →SN양 끝에 극이 생긴다
나침반 바늘은 공장에서 이미 정렬을 끝내놓은 완성된 자석이라 자기장 안에서 바늘 몸통 전체가 돌아간다. 반면 그냥 철못은 안이 흩어져 있어서, 자기장이 먼저 내부를 정렬시켜 자석으로 만든다. 그다음부터는 철못도 바늘처럼 끌린다. 극이 개별 화살표가 아니라 막대의 양 끝에만 붙어 있는 것을 보자. 화살표가 흩어져 있는 철못에는 N극도 S극도 없고, 정렬된 뒤에야 위쪽 끝에 S극, 아래쪽 끝에 N극이 생긴다.

나침반 바늘은 이미 정렬이 끝난 영구자석이다. 그러니 자기장 안에서 내부에 새로 벌어질 일이 없고, 바늘 몸통 전체가 돌림힘을 받아 방향을 가리킨다. 지구 자기장이 워낙 약해서 바늘을 뾰족한 축에 얹어 마찰을 거의 없애놓는 이유이기도 하다.

반면 그냥 철못은 두 단계를 거친다. 먼저 자기장이 내부를 정렬시켜 철못을 자석으로 만들고, 그다음에 자석끼리 끌어당긴다. 그래서 철못은 자석에 붙지만 나침반 역할은 못 한다.

가열하면 자성을 잃는 이유

위 뷰어에서 가열하기 를 눌러보면 화살표들이 다시 흐트러진다.

열은 결국 마구잡이 흔들림이다. 애써 맞춰놓은 방향을 헝클어버린다. 온도를 충분히 올리면 정렬이 아예 유지되지 못해서 자석이 자성을 완전히 잃는데, 철의 경우 약 770 °C다. 이 온도를 퀴리 온도 라고 한다.

거꾸로 말하면 냉장고 자석이 계속 자석인 건 상온의 열 요동이 정렬을 깨기에 부족하기 때문이다. 자성은 정렬과 열의 싸움이고, 퀴리 온도는 그 승부가 뒤집히는 지점이다.

정리

  • 각운동량은 회전의 양이고, 보존된다. 도는 모습과는 별개의 개념이다.
  • 각운동량에는 방향이 있고, 오른손 법칙으로 정한다. "위를 향한다"는 "위에서 보면 반시계 방향"의 줄임말이다.
  • 전자는 전하와 회전의 양을 둘 다 갖고 있어서 그 자체가 아주 작은 자석이다. 비유가 아니라 측정값이다.
  • 자기장의 방향은 그 지점의 나침반 N극이 가리키는 쪽으로 정의된다. 코일이나 자석으로 만든다.
  • 자기장 안에서 전자는 방향을 돌리는 힘(돌림힘)을 받는다. 나침반 바늘과 같다.
  • N극은 성분이 아니라 정렬된 물체의 한쪽 끝에 붙인 이름이다. 자석을 자르면 조각마다 극이 다시 생긴다.
  • 균일한 자기장에서는 돌기만 하고 이동하지 않는다. 끌려가려면 자기장이 불균일해야 한다.
  • 정렬은 흩어져 있던 방향이 한쪽으로 모이는 것이다. 모이면 상쇄가 풀려서 자석이 된다.
  • 정렬로 각운동량 총합이 생기면, 보존 법칙 때문에 쇳덩이 전체가 반대로 돌아간다. 스핀이 실재한다는 직접 증거다.
  • 자기장을 아래로 걸면 위에서 봤을 때 시계 방향이다. 전자 전하가 음수라서 부호가 두 번 뒤집힌 결과다.
  • 도는 건 자화가 변하는 동안뿐이다. 실이 되돌리면서 그 몫은 지지대로 넘어간다.
  • 회전량과 자화량의 비가 자성의 정체를 알려준다. 궤도 운동이면 1, 스핀이면 2. 측정값은 2에 가까웠다.

이어서

스핀이 왜 회전이 아닌지, 그리고 그 두 방향이 어떻게 주기율표를 만드는지는 원자 해부도에 정리해뒀다. 전자가 층 사이를 오갈 때 빛이 나오는 이야기는 뉴턴에서 광자까지결맞음과 레이저에서 다뤘다.

참고